전주 교구에서 사목하시는 어느 신부님이 내가 살고 있는 수도원을 방문하셨다.
그 신부님은 예전에 필리핀 마닐라에 계실 때 우리 수도회 형제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셨고
그 후 한국에 돌아와서도 우리 수도회 형제들과 친밀하게 지내신 분이었다.
나와는 관계를 보자면,
지난 2018년 8월 31일-9월 2일까지 전주 교구 성지를 중심으로 실시했던
'청년 순교자 축제'를 할 때에
물심양면으로 큰 도움을 주셨던 분이시기에 ... 그 신부님의 수도원 방문이 반가웠다.
또한 그 신부님은 전주 교구 내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계셨고
이번 개갑성지 경당 건축 승인 과정에도 많은 조언을 해 주셨기에
그 고마움을 전할 길이 없던 차에 ... 신부님의 수도원 방문은 참으로 기뻤다.
저녁에 오셨는데, 딱히 대접할 것은 없고
그저 수도원 냉장도에 있는 음식들을 정갈하게 차렸고,
특히, 공소 신자 분들이 우리 형제들 먹으라 주셨던 귀한 음식들을 내놓았다.
실은 진짜 고마운 건,
오늘 아침에 그 추운 바닷가에서 굴 채취 작업을 하신 공소 교우 분이
그토록 힘들게 작업했던 생굴을
늘 그렇듯 ... 수도원 입구에 몰래 놓아 두고 가셨기에
그것을 쪄서 그 신부님과 우리 형제들 모두 함께 나누어 먹었다.
(강석진의 생굴 래시피)
생굴을 찔 때에 '굴을 수도물에 잘 씻어야 한다', '찌기 전에 찜통에 어느 정도 물을 담아서 쪄야 한다.' ...
이러저러한 방법들이 있지만,
생굴을 찔 때에는 굴의 양과 찌는 통의 크기에 따라 몇 분을 쪄야 하는지가 다르고,
더군다나 평생을 바다 속에서 자랐던 생굴에게 수도물을 적신다는 것은 안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찌는 통에 민물을 넣지 않고, 적당한 불에 익혔다.
왜냐하면 생굴은 스스로 물을 머금고 있기에 불을 가하면 자신이 물고 있는 소금기를 내뿜는다.
맛의 포인트는 결국,
생굴이 스스로 우리에게 잘 익었으니 먹으라고 입을 벌려 줄 때다. 그때가 가장 맛있는 순간이다.
이렇게 생굴을 찌면 ... 소스, 초장 ... 뭐 이런 거 필요없다. 그 자체로 맛이 짬쪼름하게 일품이다.
아무튼 신부님에게 생굴을 쪄 드렸고,
또한 귀한 손님이 온다는 것을 눈치 챈 공소 교우 분께서
집에서 직접 담근 복분자 술을 선물로 주셨기에
그러한 귀한 선물로 신부님과 함께 좋은 저녁 식사가 될 수 있었다.
신부님은 식사를 하시는 동안 너무나도 흐뭇해하면서,
우리 형제들이 소박하고 단순하게 살아가는 모습에 좋은 감동을 받으셨는지
계속 불편한 것이 없는 지를 물었다.
그러다 신부님이 뭔가를 발견한 듯 물었다.
"근디, 여름에는 어떻게 지내요?"
"아직 여름을 안 지내 봐서 모르것는디요!"
"아따, 이 컨테이너에서 여름을 지내면 덥겠는디?"
"아뇨, 더우면 창문 열어 놓고 살면 되겠죠." "아니, 수도원 양반들은 뭔 말을 해도. 여기에 모기나 벌레가 얼마나 많은디, 그 놈들한테 피 뜯길라고."
"뭐 어찌 되겠죠."
신부님은 복분자에 생굴을 드시면서도 계속 여름 걱정을 해 주셨다.
그래서 아직 오지도 않고, 경험해 보지도 않는 여름 걱정이 몰려올 즈음,
"아따, 우리 신부님, 수사님, 그냥 세 분 방 마다 작은 에어컨 하나 좋으쇼. 내가 해 줄랑께."
"아뇨, 신부님. 신부님 본당 일도 바쁜데, 우리 에어컨 없이 살거예요."
"이 찜통에서 여름 못 살아요. 그냥 싸고 작은 에어컨을 해 줄랑께, 여름에도 기도 많이 하면서 잘 사쇼."
신부님은 우리가 정성스럽게 차려 놓은 저녁 식사가 너무나도 기뻤는지,
음식을 참으로 잘 드셨고,
그리고
식사를 하는 동안 수도원을 위해 뭔가를 해주고, 무슨 일이든지 도와 주려고 하셨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시는데, 신부님은 마지막까지
"다음 주에 기사님 보낼땡케, 그리 아쇼. 날 따수면 기사들도 바쁜께, 한가할 때 하자구요."
그저 정갈하게 차려드린 식사 한끼였는데,
신부님은 교구와 수도회를 떠나서, 같은 동료 사제로서의 형제애를 느끼며
행복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의 자리로 가셨다.
그리고 우리 또한 좋은 신부님과 시간을 나누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마음과 마음이 만나서, 마음을 이해하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삶에 관심을 가지고 삶에 도움을 주려고 하니
결국은 나눔에서 깊은 사랑이 커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올 여름 ... 아직 오지 않는 여름이지만, 생각해 보건데
신부님의 관심과 사랑으로 찜통 같은 공간에서도 기도할 수 있어서 ... 참 좋을 것 같다.
신부님 여름 수얼케 지내실수 있어서 맴이 놓인당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