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다. 어제가 까치의 설이었다면
오늘은 분명 설날이어야 한다.
설 연휴. 오늘하고 내일, 공소에는 아침 미사가 없다.
왜냐하면 오늘은 오전 10시 30분에 고창 성당에서 설 미사를 봉헌하고
내일은 저녁 7시에 심원 공소에서 설 미사를 봉헌하기 때문이다.
3주 전에 고창 본당 신부님은
우리에게 설 명절 오전 10시 30분 미사 집전을 요청하셨는데
사실 ... 요청했다기 보다는
고창 본당 신부님께서 어떻게 해서든 우리를 도와주고 싶어하시고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미사 예물이랑 거마비를 챙겨 주시고 싶어서 미사를 요청하셨기에!
그 고마운 마음을 아는 우리는 기꺼이 '예'하고 대답을 했다.
그런데 그 후 몇 일 동안 개갑장터 경당 마련이 숨가쁘게 돌아가고,
그래서 온 신경이 그리로 쏠려 있었기에
고창 성당 10시 30분 미사 집전에 신경을 집중할 수 없다는 걸 알고
함께 살고 있는 조 신부님에게 고창 성당 미사 집전을 부탁했다.
그러자 조 신부님은 펄쩍 뛰면서,
"강 신부님. 고창 성당 주임 신부님께서 설 미사 집전을 요청하셨기에
원장 신부님이 그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설 미사 전, 주임 신부님이 강 신부님을 보면
100% 미사 주례를 부탁하실 것이니까
강 신부님이 미사 집전이랑 강론을 준비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래도 나는 이러 저러한 이유로 조 신부님에게 미사 주례를 부탁했더니
...
마침내 우리 두 사람은 '사다리'를 탔다.
거기서 걸리는 사람이 미사 주례를 하기로 ...
그래서 ... 조 신부님이 당첨되었다. "야호 ... "
그래서 고창 본당 10시 30분 미사는 조 신부님이 주례를 하고
공소 저녁 7시 미사는 내가 주례를 하기로 했었다.
그렇게 계획을 다 잡고, 오늘 고창 본당에 미사 드리러 갔다.
오전 9시 40분에 출발을 했고, 본당에는 10시 5분 즈음 도착했을 무렵
그 순간, 본당 주임 신부님이 사제관에서 나오셨다.
정말 ... 때마침 ... 나오신 것이었다.
그래서 성당 마당에서 우리 두 사람은 주임 신부님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드렸다.
"신부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러자 신부님 역시 밝은 표정으로 인사하셨다.
"예. 신부님.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그리고 조 신부님은 평소 본당에서 미사를 자주 하셨으니,
오늘은 강 신부님이 처음으로 드리는 본당 미사라, 주례를 하시면 좋겠어요.
신자 분들과 인사도 나눌 겸."
'헐 ... 에에행 ... 이건 아닌데 ... 앵 ... 주례와 강론은 미리 정해서 왔는데 ... 헐'
사실 나는 강론할 때에 미리 준비한 원고를 차분하게 읽지 않으면 하지 못한다.
그러기에 ... 정말 ... 그러기에 ... 본당 주임 신부님 말을 듣고
내 머리에서는 쥐가 나고 ... 심장은 뛰고 ...
그 옆에 있는 조 신부님은 함박 웃음을 웃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거 봐요, 신부님. 오늘 같은 날은 원장 신부님이 미사 집전 하는 거라고 제가 말했잖아요."
아무튼 ... 머리가 하얗게 된 상태에서 ...
가까스로 미사를 봉헌했고,
우리 세 사람은 함께 점심을 먹고 ... 그런 다음 우리는 공소로 돌아왔다.
오늘을 돌아본다.
그리고 올 한 해, 하느님의 메세지를 묵상해 본다.
후배든, 젊은 사람이건 그 누구건 간에 ... 그 말을 좀 들으라고.
내가 아무리 잘나고 똑똑하다 할 지라도 ... 이제는 형제들의 말을 귀담아 들으라고
그렇게 ... 그런 일이 있었나 보다.
"참으로 좋은 주님, 제게 잘 들을 수 있는 열린 귀와 따뜻한 마음을 허락해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