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을 했다.
고창으로 내려온 후 다른 것은 몰라도 지금까지 이발은 서울에서 했었는데
이제 ... 이발도 고창에서
아니, 우리 동네 심원면에서 해야겠다고 결심한 후
4군데 미용실(*이발소는 없음) 중에 한 군데를 추천 받아
거기서 이발을 했다.
살아오는 동안, 이상하게시리 ... 미용실은 혼자 못 들어가기에
조 신부님의 도움을 받았다.
미용실 문을 조심스레 열면서, 이발하러 왔다고 말했더니, 헤어 디자이너께서 자리를 안내하며
"여기 앉으시고. 어떻게 잘라 드릴까요?" "아, 예. 단정하게 짧게 짤라 주세요." "예, 그럴께요." 그리고 ... 바리깡으로 양 옆 머리를 '드르륵 - '하고 가감없이 밀어 버렸다. 순간, 나는 "앗 ... 헐 ... " "왜요, 너무 많이 잘랐나요?"
"아 ... 아뇨. 아뇨 ... 좋습니다." 시원하게 이발을 하고 나오는데 ... 조 신부님은 계속 웃었다. 이발 후 나는 조 신부님과 함께
심원면이 자랑하는 조선 후기, 대원군 때 최고의 여자 명창인
진채선 명창의 생가터를 찾아갔다.
1847년, 고창군 심원면 검당포에서 태어난 진채선!
목소리의 성량이 풍부하여 가창에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 났고
춤 솜씨 또한 일품이었던 진채선!
오늘 ... 그 분의 생가터를 찾아갔다.
생가 터를 찾아 갔더니, 근처가 바로 바다를 볼 수 있었고,
지금은 단지 터만 남아 있으며, ,
그 분에 대한 설명도 어떤 부분은 명확하지 않게 기록되어 있었다.
하지만 가만히, 가만히 귀를 기울였더니
그 분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 했다.
내 짧은 소견으로 그 분의 목소리가 천부적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어쩌면 바로, 바다,
만돌 바닷가에서 출렁히는 그 바다,
그 바다의 파도 소리가 그 분으로 하여금 명창의 소리로 길러 냈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그 분의 일생 중에 가장 중요한 시점은
고창이 낳은 판소리의 대가 동리 신재효 선생님에게 소리를 전수 받았던 것이다.
아차, 참고로, 신재효가 재정적인 지원을 해서 길러낸 여류 명창 중에는
오늘날 '범내려온다'로 유명한 이날치 밴드가 있는데,
그 이름, 이날치가 바로 당대 유명한 여류 명창이 있었다.
암튼 신재효에게 소리를 배운 그 분은 진채선은
1867년, 경복궁이 다시 지어진 것을 기념하던 때에
판소리를 부름으로
좌중을 감탄케 했고, 거기서 흥선대원군의 총애를 받을 정도였다.
경복궁 중건이라!
그 이전의 경복궁은 조선왕조가 수립되자 390여 칸으로 창건되어 초기에 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경복궁은 전소되었고,
그 후 여러 임금들이 경복궁을 다시 짓고자 계획을 했으나
워낙 큰 공사라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그런 경복궁을 270년 후인 1867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다시 지어진 것이다.
흥선대원군이 그렇게 경복궁을 다시 짓는 것에 공을 들인 것은
아들 고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의 권위를 높이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흥선대원군은 여러 가지 개혁적인 일들을 추진했었고,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경복궁을 다시 짓는 것이었다.
1865년에 경복궁을 다시 짓는 일이 시작되자 부역하는 백성들도 많이 나왔으며,
이들을 위문하기 위해
남사당패들을 불러다 농악을 울리고 춤을 추는 등 사기를 돋운 것이다.
그러나 1866년 뜻하지 않은 화재가 발생하여
그동안 마련해 놓은 재목들이 전부 불타게 되었다.
이에 경복궁을 짓는 일이 중단될 것이라 추측까지 했으나,
흥선대원군은 아들의 왕권 강화를 위해서 그 일을 강행하여 결국 수많은 사람들의 원성을 샀다.
예를 들어,
목재 마련을 위해서 양반들의 경우 선산이나 마을 성황당의 나무까지 다 베었고,
원납전, 즉 경복궁을 다시 짓기 위한 기부금을 강제로 거두었고,
백성에게 되도록 부담을 주지 않으려던 초기의 방침과는 달리
결두전, 즉 토지에 대한 부가세를 거두었으며,
도성문을 출입하는 사람에게는 문세를 징수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고도 재원이 부족하여 당백전을 발행했다.
그것으로 인해 당시 돈의 역할을 했던 상평통보가 시중에 돌지 않았고,
상인들은 당백전의 사용을 꺼림으로 인해 물물교환이 나타났고,
그것으로 인해 화폐 가치의 하락으로 물가가 폭등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67년에 경복궁은 완공되었다.
1868년에는 고종이 경복궁으로 옮겨와 정궁으로 사용했다.
암튼 ... 사연 많은 이야기는 간략하게 언급했고,
우리 동네에
당대 최고의 명창 중의 한 분인 진채선 어르신의 생가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내가 왜 자랑스러운지 모르겠다. 하하하.
"하느님, 이 부족한 종을 당신 도구로 써 주소서. 아멘" 참고 바랍니다. 1. 2021년 3월과 4월, 두 달 동안 개갑장터 성지 내 경당 건축 공사가 진행됩니다. 그래서 공사가 끝난 5월부터는 작지만 아늑하고, 아담한 경당에서 매일 오후 3시에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가 봉헌될 예정입니다.
2. 사순시기 동안 소그룹에서 미사 신청을 하시면, 신청하신 분들과 제가 날짜와 시간을 조율해서 개갑장터 성지에서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해 드립니다. 개갑장터 성지로 전화를 주시면 친절하게 안내해 드릴께요.
* 개갑장터 성지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고창에 대하여 여러가지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주도분이 고창사람이 다 되셨네요~아!!!경당 공사가 시작되는군요 주님의뜻을 이루소서~~~
동네안에 있는 유적지도 모르고 사는 저희들이 신부님덕분에 알게돼서 너무 좋았구요 이발하시니까요 우아하게 보이십니다 제자신의 지난 삶을 뒤돌아보니 힘들다고 체념하고 무관심했던 것들이 상대방을 얼마나 힘들게 했을까 하고 회개하면서 좀더 끌어안는 마음으로 관심을 가지고 살았으면 상대방도 변하고 제 자신도 우아한 삶이 되지안았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주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1234
신부님
개갑성지에서는 사순시기에는 미사가 없나요?
레지오단원 몇분하고 같이가서 십자가의길. 고해성사 미사봉헌하러 가려했는데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