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과를 보면, 매일 아침, 9시 전후로 해서 성지로 출근한 후
오후 5시 전후로 해서 퇴근하여 공소로 돌아온다.
그리고 공사 이야기를 하면,
어제 부터 외양간 경당 외부 판넬을 부착하기 위한 기초 철근 공사가 시작되었다.
어제, 오늘 - 성지에는 삼삼오오, 순례자들이 방문을 하는데
늘 그렇듯 - 그 분들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 없기에
십자가의 길을 바치거나 혹은 성지 방문 스탬프를 찍고
또 다시 어디론가 가 버린다.
그럴 때 마다 어렵사리 개갑장터 순교 성지를 찾아온 순례자들에게
미안하고 죄송할 뿐이다.
성지에 있으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봄이 오면서 - 점차 할 일이 생겨나고 있었다.
나무 전정과 잔디 잡초 뽑기가 그 대표적인 것인데
넓어도 너무 넓은 성지라 - 엄두가 나지 않는다.
또한 외양간 경당이 마련되면 매일 오후 3시에 미사를 봉헌하게 될 터인데
해설이나 독서자 뿐 아니라, 제대 봉사자 조차 찾을 수 없는 여건이
힘을 빠지게도 하고, 마음을 무겁게도 만든다.
주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찾아야 할 때이다.
앞으로 혼자서 미사를 봉헌할 때도 있고,
해설자, 독서자 역할까지 내가 해야 할 일들도 생길 것이다.
가능할까? 가능할까?
교우들을 귀하게 생각한다면 - 교우들을 위해 사제가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또 다시 걱정-근심-걱정-근심-걱정-근심 ... 의 소용돌이 속에 있을 때
경당 공사장 바로 옆에서 개구리 한 마리가 겨울 잠을 깨고 나왔다.
나의 걱정-근심 소리가 무척 시끄러웠나 보다.
개구리가 나에게 말했다.
"어이, 강 신부. 이제 그만 좀 떠들어라.
아직 오지도 않은 시간, 아직 겪지도 않는 일들을 미리 걱정해서 뭐가 그리 좋다고 ...
우리 좀 봐.
겨울 동안은 그냥 푹 - 자고,
봄이 되면 깨어나서 뽈짝 뽈짝 뛰고,
여름에는 무더위에서 즐기고,
가을에는 잘 먹고, 또 먹어서 겨울 잠 잘 준비를 하고,
뭐 그렇게 사는 것이 - 사는 것 아니겠어."
'저 놈의 개구리 녀석, 뭔 소리를 하는거야!'하며 애써 못 들은 척 했지만,
실은 개구리 말이 맞는 말 같다.
아주 우연찮은 계기가 콘테이너 경당이 되었고,
너무나도 순간적인 계기가 조립식 판넬 경당이 되었고,
돈 10원 한 푼도 없는데 - 공사비가 한 푼, 두 푼 마련이 되고,
개갑장터 순교성지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개갑장터 순교성지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이 마당에 ...
전례 봉사자, 하느님께서 사람 마음을 움직여서 다 보내 주실 거야 ... 그렇게 위로의 기대를 가져본다.
그리고 오후 5시 즈음 퇴근을 하려는데,
성지 사무실 옆 동백 나무에서 붉은 동백이 아니라, 분홍 동백이 예쁘게 피었다.
날도 춥고, 바람도 세고, 쌀쌀함이 꼭 - 감기 걸릴 것 같은데
그게 아닌가 보다.
분홍 동백 꽃이 참 예뻤다. 정말 ... 예뻤다.
"주님, 그저 당신 뜻 안에서 살아 숨 쉬게 해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