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감영으로 이송된 최여겸에게 재판관은 물었다.
“네 동조자들을 고하라.”
재판관의 이 물음에 최여겸은 1801년 박해가 일어날 당시, 이미 체포되었거나 처형된 교우 몇 명의 이름을 실토했다. 그러자 재판관은 최여겸이 이미 죽은 교우들의 이름만을 말했다는 이유로 호통을 치면서 그에 대한 고문을 배로 늘려 무자비한 혹형을 가했다. 그리고 최여겸을 다시 옥에 집어 넣었다.
그 다음날에도 문초를 받았던 최여겸은 '격외', 즉 일정한 격식이나 관례를 벗어날 정도의 곤장을 네 다섯 차례나 더 받았고, 전주 감영의 하인들로부터 세 차례 '막대 찌르기'를 당하였다.
6일 후에 다시 재판이 열렸고, 재판관은 소환된 최여겸에게 물었다.
“너는 왜 천주교를 따르느냐?”
이에 최여겸은 대답했다.
“선한 이들에게는 상이 약속되어 있고 악한 이들은 벌을 받기로 되어 있기에 그 교리를 따릅니다.”
천주교 교리 중에 '상선벌악'이 있는데, 최여겸은 이 교리 내용을 재판관에게 당당하게 말했던 것이다. '상선벌악'이라! 어쩌면 최여겸에게 '상선벌악'의 화두는 지금까지 자신이 살았던 삶의 아픔을 느끼게 하는 구절인 셈이다.
조선 후기 사회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경험한 후, 지나칠 정도로 강화된 성리학적 영향력 아래 ... 수많은 혼란과 불안이 도래했었다.
관리들의 불의와 남녀불평등의 불의와 권력과 신분제에서 오는 불의로 인해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고통속에서 살았다. 조선 정부에서 '어진 임금'이 나라를 통치하기에 '태평성대'의 세상이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일반 백성들은 가난과 굶주림, 질병의 고통의 불의 희생양으로 살고 있었다.
이런 세상에서 최여겸은 천주교 교리를 통해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께서 통치하시는 그 나라를 깨닫게 되면서, 그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눈을 뜨게 되었다. 그게 바로 최여겸에게 가톨릭 신앙을 통해 꿈을 꾼 것이 '상선벌악'의 세상이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본다. 복자 최여겸이 천주교의 가르침을 '상선벌악'이라 당당히 말했다면, 지금 우리 사는 세상은 과연 '상선벌악'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을까 ... 너무나도 자주, 많은 경우 나쁜 사람들이 잘 되고, 선하게 사는 사람들이 불행을 겪는 모습을 보고 있기에 ...
그러기에 '상선벌악'이라는 천주교 4대 교리의 단순한 문구가 우리에게 얼마나 깊고 깊은 성찰의 길로 이끌어 주고 있는지를 보게 된다.
그러자 그 재판관은 최여겸에게 다시 물었다.
“악한 이들이란 어떤 자들이냐?”
최여겸은 '남의 재물을 빼앗고', '음행 등을 일삼는 자'가 바로 '악한 자'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듣고 재판관은 또 다시 말했다.
“그러면 여자들과 관계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냐?”
이에 최여겸은
“합법적인 결혼에서 갖는 관계 이외에는 어떤 관계도 가질 수 없습니다.”
이 부분은 매우 의미 심장한 내용이다. 조선 시대는 가부장적 가족 제도 속에서 본처 외에 첩을 둘 수 있게 하였다. 그래서 조선 시대 남성들은 별별 이유를 통해 본처 외에 첩을 두는 것이 자연스러운 관행 처럼 만들었지만, 여성의 경우 과부가 되면 '지아비에 대한 정절을 유지한다'는 이유로 재혼을 금지했고, 외적으로는 '열녀문', '열녀비' 등을 세워주는 행위 등을 통해 여성의 삶을 철저히 고립시켰다.
이러한 때에 최여겸은 '합법적인 결혼'을 통한 부부의 삶을 강조함으로서 불의한 사회적 제도에 대해서도 항의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내용은 결국 1800년대 이전부터 최여겸은 천주교 신앙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인간의 권리를 지켜주고자 노력했고, 신앙의 가르침에 대한 충실히 헌신하며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최여겸의 노력은 결국 일상 안에서 천주교 신앙인 답게 사고하고 행동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고, 이러한 평소 준비된 삶의 자세는 재판관 앞에서도 자신의 신앙을 전 존재로 내어놓을 수 있었다.
재판관은 최여겸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결안, 즉 국왕의 최종 결재에 따라 사형 집행을 하기 전에 사형을 확정 짓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고, 이러한 문서에 최여겸을 서명하게 했다.
'주님, 최여겸 마티아가 보여준 교리에 대한 열망과 교리 내용을 삶 안에서 살아가려는 노력들을 저희들 마음 속에도 심어주소서, 아멘'
장터지기의 일기장 덕분에 복자 최여겸에 대해 상세히 알게되고, 알게되니 , 순교자의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설이 내일 모래라, 더욱 더 우리의 오늘을 만들어 주신 그분들의 죽음을 기리게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