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6일 금요일, 3월 28일 주일 - 이렇게 이틀 동안
심원 공소 교우 분들과 함께 개갑장터 순교성지 내 제초 작업을 실시하기로 했고,
어제는 10여 분 넘는 교우 분들이 오셔서
김을 맸고, 심하게 퍼진 잡초 무리들은 제초제를 뿌리는 작업을 했다.
내일도 작업을 할 계획인데 힘든 작업이라 우리 공소 교우 분들의 건강이 걱정이다.
그리고 오늘,
잠시 쉬는 하루의 시간이라
몇 일 전에 우연히 운전하고 가다가,
우리 동네 근처에서 발견한 몇 개의 고인돌 군락지를 보고
깜짝 놀라 - 사진을 찍어 놓은 것을 장터지기 일기에 올려 나누고자 한다..
고인돌, 다시 말해서 한자어로는 '지석묘'로서
그 당시 권력을 지닌 지배자의 무덤 형태로
청동기 시대 유적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례 문화를 볼 수 있다.
고인돌을 통해 볼 수 있는 당시 장례 문화는
청동기 시대 기간 동안 폭넓게 사용되었고, 철기 시대로 접어들면서 소멸되었다.
특히, 고인돌을 통해서 선사 시대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집단으로 생활했음을 반증한다.
고창에 있는 고인돌 박물관에 가면 여러 종류의 고인돌을 확인할 수 있다.
고창 고인돌 유적지는 우리나라 최대의 고인돌 군집으로 1.5km를 중심으로
440여개의 다양한 고인돌이 있는데,
크게는 탁자식 고인돌, 바둑판식 고인돌, 개석식 고인돌로 구분해 놓았다.
입장료가 있어서 갈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 ... 가 보면 좋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고인돌 박물관 이외에
우연히 지나가다가 발견한 우리 동네, 도천리 지역의 고인돌 몇개는
아마도 개석식 고인돌이 아닐까 추정해 본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전국에 약 3만 개의 고인돌이 남아 있는데,
세계 고인돌의 반 이상이 우리나라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고인돌을 만들어 세운 형태도 다양해서
강화, 화순, 고창의 고인돌은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청동기 시대의 유적인 고인돌을 통해서 당시 선사 시대의 사회 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청동기 시대는
크고 무거운 돌들을 여러 사람이 함께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던 사회였던 것이다.
그리고 고인돌 지역에서 발견된 '그물 추'라든자, 가락 바퀴, 동검과 돌검 등의 유물들을 통해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나 그 밖의 것들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를 뛰어 넘는 오래된 문화가 있는 고창 동네에 살고 있음이 고맙고,
우연히
이것, 저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 고창 동네의 특성을 보고 또 고마움을 느낀다.
"주님, 인간의 역사 안으로 오시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겪으니
당신의 섭리와 자비는 찬미와 영광을 받으소서. 아멘"
신부님들도 고생많으셨어요 공동체 신자분들도 함께 할수 있어서 너무 좋았구요
마음모아 하다보니 깨끗하게 정리되고 보기좋았어요 내일도 일하라고 밤에 비가 안
오고 아무래도 신부님께서 기도 하셨나봐요 저희들도 준비하고 기도하고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읏음으로 하루를 마침니다
신부님들도 고생많으셨어요 공동체 신자분들도 함께 할수 있어서 너무 좋았구요
마음모아 하다보니 깨끗하게 정리되고 보기좋았어요 내일도 일하라고 밤에 비가 안
오고 아무래도 신부님께서 기도 하셨나봐요 저희들도 준비하고 기도하고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읏음으로 하루를 마침니다